발로 만든 인공지능 음식책 — 거지북을 만들며
0화 · 발로 만든 인공지능 음식책을 만들기로 했다
식단 앱은 두 번이나 지웠습니다. 대신 「세 끼 RPG」를 기획 중입니다.
저녁 9시.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습니다. 점심을 대충 먹었는지, 아예 건너뛴 건지 기억이 안 납니다. 「내일부터는 세 끼 챙겨 먹자」고 다짐하고, 스마트폰에 식단 기록 앱을 깔아 봅니다. 칼로리, 영양소, 체중 그래프. 며칠은 성실합니다. 그런데 2주쯤 지나면 앱이 홈 화면 맨 뒤로 밀립니다. 언젠가 「용량 부족」 알림과 함께 삭제됩니다.
이 경험, 한 번이 아닙니다.
잘 먹는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
식단 앱이 나쁜 건 아닙니다. 데이터를 잘 보여줍니다. 다만 매일 돌아올 이유가 약합니다. 숫자는 숫자일 뿐이고, 어제 잘 먹었다는 사실이 오늘 아침의 나를 붙잡아 주지 못합니다. Strava는 「오늘도 달렸다」는 증거가 남고, Duolingo는 「스트릭이 끊긴다」는 공포가 있습니다. 밥은 왜 그런 게 없을까, 생각했습니다.
밥은 하루 세 번입니다. 아침, 점심, 저녁.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가장 평범한 루틴이면서, 지키기 가장 어려운 루틴이기도 합니다. 「잘 먹기」는 의지 문제만이 아니라 구조와 재미의 문제라고 믿게 됐습니다.
그래서 만들기로 한 것이 밥로그 — 조선식 별명으로는 거지북, 글로벌 이름으로는 Foodbook입니다. 공식 타이틀은 장난스럽게 「발로 만든 인공지능 음식책」 입니다. (AI는 나중 이야기입니다. 지금은 발로, 손으로, 기획서부터 만들고 있습니다.)
식단 앱이 아니라 「공기 채우기 RPG」
한 줄로 말하면 이렇습니다.
하루 세 끼를 사진으로 기록하면 거지에서 벼슬까지 올라가고, 같은 신분끼리 모여 그릇을 채워 가는 서비스.
먹은 사진 한 장이 공기 하나입니다. 아침·점심·저녁을 채우면 오늘 3/3 — 하루 퀘스트 클리어. 기록이 쌓이면 신분이 오릅니다. 거지, 머슴, 평민, 양반, 벼슬아치. 그릇도 바뀝니다. 플라스틱 바가지에서 시작해, 양반이 되면 놋그릇과 양반 인증서까지.
식단 앱처럼 「당신은 1,847kcal를 섭취했습니다」가 아닙니다. 「오늘 그릇 두 개 채웠고, 거지에서 머슴까지 5공기 남았습니다」 에 가깝습니다.
(여기에 mock-app 홈 화면 캡처 삽입)
네 가지로 설명하면
기획하면서 기능을 네 덩어리로 나눴습니다.
① 기록 — 아침·점심·저녁, 시간대에 맞게 사진을 올립니다. 야식은 따로. (새벽 라면을 아침으로 끼워 넣을 수 없게 설계했습니다. 이건 2편에서 풀겠습니다.)
② 데이터화 — 쌓인 공기가 캘린더와 히트맵으로 돌아옵니다. GitHub 잔디처럼, 밥 잔디를 채우는 느낌.
③ 신분 & 성장 — 먹을수록 올라갑니다. 등업 직전에는 팔자 룰렛이 돌아갑니다. 「인생은 타고난 팔자대로」 — 다음 등급까지 필요한 공기 수가 사람마다 달라집니다.
④ 신분별 커뮤니티 — 같은 Tier끼리 게시판. 글을 쓰려면 보유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. 밥을 먹고 기록해야 말할 수 있습니다. 그릇이 비면 읽기만 가능합니다.
네 가지가 한 루프로 묶입니다. 먹고 → 찍고 → 쌓이고 → 올라가고 → 같이 얘기한다.
왜 이렇게까지 복잡하게?
솔직히 말하면, 더 단순하게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. 사진 올리면 끝, 끝.
하지만 단순한 기록 앱은 제가 두 번이나 지웠습니다. 재미 없으면 오래 못 갑니다. 조선 신분제와 거지굴, 팔자 룰렛, 양반 인증서 — 겉보기에 우스꽝스럽습니다. 그게 의도입니다. 밥 먹는 일을 너무 진지하게 만들면 금방 지칩니다. 적당히 웃으면서, 적당히 경쟁하면서, 적당히 데이터를 보면서 — 그 중간 지점을 찾고 있습니다.
글로벌에서는 같은 게임에 중세 유럽 스킨(Foodbook)을 씌웁니다. 거지 대신 Vagabond, 양반 대신 Knight. 엔진은 하나, 세계관만 바꿉니다. 도메인 foodbook.cc 를 잡아 두었습니다.
이 시리즈에서 할 이야기
지금 MVP는 아직 코드 한 줄 전입니다. 대신 기획서, 흐름도, 화면 목업까지는 발로 만들어 두었습니다. 이 브런ch 시리즈에서는 그 과정을 순서대로 풀어 쓰려 합니다.
- 회원가입하면 왜 거지부터 시작하는지
- 11시 정각이면 왜 점심인지
- 팔자 룰렛을 왜 넣었는지
- 그릇이 비면 왜 말 못 하는지
- 1만 명 베타까지 어떻게 갈 것인지
기획서를 그대로 올리지는 않겠습니다. 「이 기능 넣음」이 아니라 「이렇게 고민했고, 그래서 이렇게 결정했다」 를 쓰겠습니다.
마지막으로
밥 잘 챙겨 먹는다는 건, 생각보다 크고 작은 일입니다. 거창한 웰니스가 아니라, 오늘도 한 끼 더 제때 먹었다는 사실이 쌓이면 달라진다고 믿습니다. 그 쌓임을 재미있게 만드는 도구 — 그게 지금 만들고 있는 거지북입니다.
다음 편에서는 온보딩 이야기를 합니다. 다른 서비스는 「환영합니다」라고 말하는데, 우리는 「회원가입을 하면 거지부터 시작하게 됩니다. 그래도 진행하시겠습니까?」 라고 묻습니다. 왜 그런지 — 1편에서 이어집니다.
📬 이 글은 「발로 만든 인공지능 음식책 — 거지북을 만들며」 시리즈의 시작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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